로스엔젤레스 올림픽을 이긴 88서울 올림픽 대회


  2만 7천 72명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성공의 주역은 바로 자원봉사자이다. 이 기사는 86 서울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 대회의 성공적으로 이끌어 냈던 그들의 이야기다.  88서울올림픽 당시 한국을 방문했던 어느 외신기자는 이런 말을 남겼다. “한국의 자원봉사자들처럼 이웃의 정을 느끼게 하는 국민들은 흔하지 않다. 친절하고 성실했던 자원봉사자들이 있었기에 88서울올림픽은 성공할 수 있었다.”





  그 때의 서울 올림픽조직위원회와 정부 또한 86 서울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이 운명을 자원봉사제도의 성공여부에 걸었다. 그리고 완벽하게 성공하였다. 자원봉사자들은 외국인들에게 친절한 한국인이라는 인상을 남겼다. 봉사단은 선수단 숙소의 화장실 청소까지 굳은 일을 마다하지 않았으며 대회기간 중 100% 참여를 통해 성실함을 보여주었다. 특히나 선수단과 외국관중들에 대한 친절한 안내와 통역서비스는 외국인들에게 높은 만족감을 주었다.  


 자원봉사자올림픽으로 불렸던 로스엔젤레스 올림픽 때의 참여한 자원봉사자 수는 전체요원의 40%였다. 86 서울아시안게임과 88서울 올림픽 대회 참여한 자원봉사자 수는 전체요원의 58%로 사실상 역대 국제종합 체육대회 중 자원봉사자 참여율에서는 아직까지도 최고를 기록하고있다. 



  숨은 조력자 






  그 당시 자원봉사자들이 받은 혜택은 하루에 1,500원 남짓의 교통비와 도시락 그리고 유니폼과 기념메달 뿐이었다. 돈으로 환산하면 8만원어치 남짓한 것이었다. 고된 노동과 서비스로 중간에 포기할 수도 있었지만, 그들은 봉사의 진정한 가치를 몸소 실천하였고 우리 후대에게 보여주었다. 


  외국계 기업에서 근무했던 이장원 선생님은 조국에서 열리는 세계적인 축제에 봉사하기 위해서 특별휴가를 얻어 88올림픽 대회 통번역자원봉사자로 나섰다. 그때 그는 레슬링 본부 임시출입증 관리계장이었다. 그에 말에 따르면 임시 출입증은 그 당시 안전관리의 핵심이었다. 이장원 선생님의 쫄깃하고 감동적 실화 2주, 88올림픽 자원봉사 현장 이야기를 인터뷰를 통해 들어보았다.




정지현 기자 (이하 정) :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이장원 (이하 이) : 나는 이장원이고요. 1944년생이니까 금년에 우리나이로 일흔둘 입니다. 88서울올림픽 때 통역자원봉사요원으로 참가를 했었어요.


정 : 85년 10월에 86서울아시안게임, 88서울올림픽 대회 자원봉사요원 모집 당시 분위기와 자원봉사요원을 신청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이 : 그때까지 우리나라에서 이런 국제적인 스포츠 대회를 주관을 한 경험이 별로 없었어요. 그래서 조직위 같은 데서는 상당히 걱정을 했죠. 과연 우리가 잘해낼 수 있을까. 그런 걱정이 많았고 또 사회적으로 불안했어요. 민주화운동하고 군사정권한 때 이런 게 있었고 노동운동 같은 것도 상당히 격렬하게 일어나면서 사회적인 불안감을 우리나라 국민들 뿐만 아니라 국제사회까지도 한국이 과연 이 세계 최대의 스포츠 행사인 올림픽을 잘 치러낼 수 있을까 이런 걱정들 많이 했어요. 나도  걱정하는 국민 중에 한 사람이 돼서 '아 나라도 여기 참여해서 열심히 하면 최소한 또 실패하지 않고 좀 뭐 잘했다 이렇게 할 수 있을까 '그런 마음에서 참가를 해야 되겠다 생각을 했죠.


정 : 88서울올림픽 자원봉사활동 당시 어떤 활동을 담당하셨나요?

이 : 나는 그 레슬링 본부에 배정을 받았어요. 그때 레슬링 본부는 지금 장지동에 있는 국군상무체육관이었어요. 그 때 당시 자원봉사자 동료들이 은퇴하신 분들과 대학생 위주더라구요. 그 사이에서는 내가 조금 눈에 띄었나봐요. 40대에 직장인, 휴가까지 내서 자원봉사를 하러 한국에 왔거든요. 그래서 맡은 업무가 바로 임시출입증 담당이었어요. 선수나 임원이 출입증을 잃어버리거나 실수로 못챙겨 온 경우 신원확인 후 발급해 주는 일이다보니 안전관리와 보안의 핵심이었죠. 까다로운 업무였어요. 현장감각도 필요했고, 시간이 촉박한 상황에서 직관적인 판단력도 필요로 했어요. 


정: 86서울아시안게임, 88서울올림픽 대회 자원봉사활동은 실로 어마어마한 성과를 가져와줬다고 봅니다. 자원봉사활동하실 때의 한계라던지 힘들었던 부분은 없으셨나요?

이 : 뭐 특별히 그런 것은 그때 못 느꼈어요. '열심히 해야 되겠다는 생각만 있었지.' 뭐가 문제라든가 불편하다든가 이런 생각은 전혀 할 겨를이 없었죠. 어떻게 하든지 문제가 생기면 해결을 해야 되고 이걸 아주 잘 원만하게 풀어야 된다라는 문제해결적인 생각만 했었어요. 그러다보니 한계나 힘든 부분을 느낄 기력이 없었네요.(웃음)


정 : 이장원선생님에게 88서울 올림픽 대회 자원봉사는 어떤 의미인지?

이 : 사실 88올림픽 주최국 공식지정 발표는 81년도에 났었어요. 그때는 우리나라를 바라보는 국제적인 여론이 아주 좋지 않았거든요. 왜냐하면 역사적으로 광주사태가 지난 후 였다보니 우리사회가 굉장히 불안하고 군사 쿠데타 이런 여론이 아주 국제적으로 퍼져가지고 있었죠. 심지어는 그 IOC(국제 올림픽 위원회) 보고서에는 한국이 올림픽을 개최 할 수 없다고 신랄한 비판을 했어요. 정말 속상했어요. 그런데 국제적인 비판와 미심쩍은 의심때문에 내가 올림픽에 자원봉사하게 됬었죠. 하고나니 아 열심히 잘 했다. 보람있었다. 참여하길 정말 잘했구나 라는 생각 아직도 제 마음 속에 남아있네요. 




  이장원 선생님은 88 서울올림픽 대회 이후에도 2002년 월드컵 경기때 서울시자원봉사자로도 활동하셨다고 한다. 월드컵으로 서울을 방문하는 외국인에게 서울문화재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의 통번역봉사자로 참가하셨다고 한다. 경희궁 소개하셨다고 한다. 그 다음 해에는 종묘에서 정식 종묘제례를 주한 이태리 대사에게 안내했었고, 그 다음해는 강남구에서 '싸이 강남스타일' 덕분에 한류열풍이 불어 강남을 찾아온 외국인들을 위해 압구정 로데역에서 외국인 안내하는 자원봉사활동을 하셨다고 한다. 이장원 선생님은 88 서울올림픽 대회 이후에도 꾸준히 통번역 봉사자로 지역사회와 대한민국을 위해 자원봉사활동하고 계셨다.


  한 시간이 채 안 되는 시간의 짧은 만남, 마지막으로 이장원 선생님께 자원봉사란 어떤의미인지 그리고 4년 뒤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2018 평창올림픽 미래의 현장자원봉사요원들에게 남기는 메세지를 담아보았다.  

  




 "평창올림픽을 잘 이끌어줄 자원봉사 여러분, 저는 자원봉사활동이라는 것은 참가하는 본인한테 정말 귀한 것을 가르쳐주는 활동이라고 생각을 해요. 왜냐하면 자원봉사활동이 첫째는 자원이잖아요. 자기 스스로 한다는 얘기거든요. 세상에 뭐든 일이 스스로 할 때 가장 행복하죠. 누가 시켜서 한다거나 돈 벌려고 한다거나 이런 건 아주 힘들고 그렇겠지만 내가 스스로 한다고 하면 아주 좋잖아요. 그게 첫째 자원봉사활동이 가지고 있는 가치고 두 번째는 봉사잖아요. 남을 위해서 하는 거죠. 나를 위해서 하는 게 아니고 그러면 얼마나 보람을 많이 느끼겠어요. 마지막으로 이 자원봉사활동이 가지고 있는 아주 귀한 가치가 실천이라는 거죠. 세상에 보면 말을 잘하는 사람은 많아요. 자기가 최고인 것처럼 말을 잘하는 사람은 많지만 실천을 하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는 않아요. 그런데 자원봉사활동이라는 것은 직접 참가해서 행동으로 실천하는 거잖아요. 나는 자원봉사활동이 인생을 사는데 아주 필요한 자기 행복을 위한 굉장히 귀한 가치 세 가지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이 자원봉사활동은 그런 가치가 있다 하는 것을 확실히 느끼고 활동을 했으면 좋겠어요." 


이장원 선생님께 자원봉사란?

행복이죠. 자원봉사를 함으로써 정말 행복했어요. 지금 생각해도 아 하길 잘했다. 

몸은 조금 힘이 들었어도 아주 보람이 있고 행복한 시간 이었다 이렇게 기억을 해요.





 이장원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나누는 삶의 의미는 나눌수록 커진다는 말을 마음속에 다시 한 번 새겨 두게 한다. 88서울 올림픽 대회 자원봉사요원 활동 당시의 기억을 되살려 밝은 미소로 인터뷰에 응해주신 이장원 선생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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