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우리나라가 처음 ‘국제개발’에 눈을 뜨기 시작한 것은 1988년, 올림픽이 끝나고부터다. 88 올림픽은 우리에게 새로운 경험을 안겨주었는데, 가난하고 원조 받던 나라에서 올림픽을 개최하는 나라로 국가 이미지가 바뀌었고, 처음으로 국가재정이 흑자를 이루는 경험을 선사한 것이다. 그러한 경험은 우리도 선진국 준비를 해야 한다는 여론으로 이어졌고 가장 가까운 일본의 JICA(일본국제협력기구, 1960년대~) 국제봉사활동 사례를 참고해 1992년 KOICA(한국국제협력기구)를 설립하게 된다. 


KOICA 이전에도 국제 자원봉사는 이미 있었다. 1980년대 당시 세계 자원봉사의 흐름은 국제 개발에 앞서 먼저 국제 자원봉사를 시작하는 것이었다. 거창한 국제개발단체를 만들기에 부담을 느꼈던 당시 정부는 1989년 미국의 평화봉사단(Peace Corps)을 참고하여 한국청년봉사단을 창단했다. 한국청년봉사단은 국제 자원봉사의 원조격이라 할 수 있다.


해외 자원봉사의 뿌리를 취재한다고 하자 많은 분들이, 우리나라 국제 자원활동 및 국제개발협력의 초석을 다진 대표적 인물인 이태주 교수를 추천했다.  이태주 교수로부터 당시의 이야기는 물론, 현재 우리가 가져야 할 해외 자원봉사에 대한 자세와 사명의식, 발전방안을 물었다. 


 

 이태주 교수는 누구?

 우리나라 국제 자원활동 및 국제개발협력의 초석을 다진 대표적 인물. 100여 개국을 돌아다니며 국제개발협력의 견인차 역할을 해내고 있는 ‘실천인류학자’이기도 하다. 대안적 국제개발협력을 모색하는 시민운동단체 ODA Watch 대표로 역임했으며, 현재는 국제개발협력 연구를 맡아하는 (사)글로벌발전연구 ReDI의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외교부, 복지부, 여성가족부, 문화관광부, 코이카 등 여러 관련 부처의 정책자문을 하고 있으며, 개발도상국 및 빈곤국의 국제NGO들과도 네트워크를 맺고 왕성히 활동하고 있는 국제개발협력 전문가이기도 하다. 또한 피지와 파푸아 뉴기니 등에서 현장 연구를 수행한 문화인류학자로서 2002년부터 한성대학교 교양교육원 문화인류학과 교수로 재직 중에 있다.




# 해외 자원봉사의 시작은 어디였을까?


Q. 만나서 반갑습니다. 해외 자원봉사의 뿌리를 취재한다고 하니 많은 분들이 이태주 교수님을 추천해 

    주었습니다. 이 질문부터 해야 할 것 같네요. 해외 자원봉사와 국제개발협력은 어떻게 다를까요?


사실 국제개발협력은 국제자원봉사활동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봐도 좋습니다. 현재 많은 단체들이 참여하고 국제개발협력이나 공적개발원조 등의 뿌리를 국제 자원봉사활동이라는 거죠.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 오면서 세계 1차 대전이 끝나고 세계는 황폐화가 되었습니다. 유럽에서 전쟁으로 폐허된 마을을 복구하자는 움직임이 일기 시작했는데요. 옥스팜이나 월드비전 등과 같은 굴지의 국제 NGO들도 이 무렵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오늘날의 옥스팜도 처음엔 그리스를 돕기 위한 대학생들로부터 시작되었고, 현재 각광받고 있는 국제 자원봉사의 한 형태인 ‘워크캠프’도 서로의 문화를 인정하고 이해하면서 함께 살아가고자 하는 세계 젊은이들의 움직임으로 시작된 것입니다. 이 시절 생겨난 많은 단체들의 설립 이유가 ‘서로를 돕기 위해서’라는 점은 주목할 만하지요. 

이후 국제 자원봉사나 국제개발협력에 나타난 큰 흐름은 세계 2차 대전 이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북반구가 남반구를 도와주는 방향으로 변화한 것입니다. 그리고 단체들이 더욱 조직화 되면서 국제자원봉사활동이 국제개발 사업으로 넓혀지게 되었습니다.



Q. 그럼 한국의 해외 자원봉사는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우리나라가 처음 ‘국제개발’에 눈을 뜨기 시작한 것은 1988년, 올림픽이 끝나고부터입니다. 88 올림픽은 우리에게 새로운 경험들을 안겨 주었는데요. 가난하고 원조 받던 나라에서 올림픽을 개최하는 나라로 국가 이미지가 바뀌었고, 처음으로 국가재정이 흑자를 이루는 경험도 하게 됐습니다. 그러면서 이제 우리도 선진국 준비를 해야 하지 않나 하는 여론이 일었습니다. 그러면서 가장 가까운 일본의 사례를 살펴보게 되었고, 일본은 1960년대부터 JAICA(일본국제협력기구)를 설립하여 국제봉사활동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이를 참고해 1992년 KOICA(한국국제협력기구)를 설립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KOICA 이전에 국제 자원봉사가 이미 시작되고 있었죠. 국제 개발에 앞서 국제 자원봉사가 먼저 시작된 것은 세계 자원봉사의 흐름과도 맞았습니다. 거창한 국제개발단체를 만들기에 부담을 느꼈던 당시 정부는 1989년 미국의 평화봉사단(Peace Corps)을 참고하여 한국청년봉사단을 창단하였습니다. 평화봉사단은 미국 정부가 저개발국 지원을 위해 파견한 국가청년봉사단을 말합니다. 이때 평화봉사단으로 한국에서 활동했던 미국 청년들은 한국 사회 실정에 대해 경험하고 잘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후 한국 전문가로 성장하여 미국 대사관에서 일을 하게 된 경우도 꽤 있었지요. 


▲ 교수님의 연구실 문에는 그간의 활동을 볼 수 있는 사진들이 빼곡이 붙어 있었다.



Q. 한국청년봉사단이 국제 자원봉사의 원조였군요. 당시 어떤 분들이 함께 했었나요?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당시 유네스코한국위원회가 한국청년봉사단의 창단을 도왔었는데요. 돌아가신 강대근 원장님, 현재 일본에서 활동 중인 김승범 코이카 실장님도 그때 함께 했던 분들입니다. 저는 한국 청년봉사단의 지도교수로 참여했었구요. 


한국청년봉사단은 한국에서 처음으로 만든 해외봉사단으로서 나눔과 섬김을 모토로 해서 활동을 했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하려고 최선을 다했죠. 자선적으로 무엇을 베푸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문화를 인정하고 배려하고자 노력했습니다. 그들이 먹는 음식을 함께 먹고, 그들이 추는 춤을 함께 추었지요. 이런 과정들이 그 나라를 가기 전에 필요한 소양으로 장시간 교육으로 진행됐었습니다. 




한국청년봉사단이 만들어지고, 우리나라에 이런 봉사단이 있다는 것에 놀란 여러 방송사에서는 그들에 대한 이야기를 앞 다퉈 다루었습니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 건  현재 나이지리아 코이카 소장으로 있는 전영숙 씨가 청년 시절 인도네시아의 한  농촌마을에서 활동을 할 때 당시 활동을 소개했던 다큐멘터리입니다. 방송에서는 현지인들과 함께 농사를 지으면서도 또 한편 한국노래를 들으며 고국의 부모님을 그리워하는 전영숙 씨의 모습을 보여주었고, 많은 국민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어 큰 반향을 얻었었죠. 아, 이제 우리도 다른 나라를 돕는 나라가 되었구나, 우리 청년들이 이웃국가를 돕기 위해 이렇게 어려운 일을 하고 있구나,하는 감동이 생겨난 것입니다. 이를 계기로 많은 NGO들이 해외 봉사단을 파견하기 시작했고, 기업들도 덩달아 자원봉사단을 다른 나라로 보내기 시작했지요. 



Q. 우리나라에도 어려운 이들이 많은데 왜 해외에 가서 봉사를 하냐는 시각도 여전히 있습니다. 

    해외 자원봉사가 우리 사회에 기여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매년 많은 대학생들이 자원봉사를 하러 해외로 나가는데, 이 경험은 청년 개개인에게 정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해외 자원봉사를 통해서 세계가 넓다는 건 물론이거니와, 미처 몰랐던 자신의 또 다른 면모를 깨닫고 돌아오기도 합니다. 가능성, 야망, 미래에 대한 포부 등 학교에서 주지 못하는 것들을 깨닫고 배워오는 것입니다. 이런 게 진짜 service learning(봉사학습)이지요. 이런 깨달음을 얻은 청년들이 많아질수록 우리 사회도 더욱 건강해지지 않을까요. 

물론 때로는 부정적인 경우도 있습니다. 해외로 나가는 봉사자들 모두가 그런 경험을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해외 자원봉사활동의 경우 현지에서 참여할 프로젝트를 정해서 나가는 경우가 많은데, 준비되지 않은 자원봉사자들이 파견됨에 따라 이 활동들이 돈을 쓰기 위한 활동이 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바람직한 해외 자원봉사는 서로 주고받는 봉사입니다. 우리가 하는 해외자원봉사활동들이 가르치기식, 보여주기식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꽤 많습니다. 현지 사람들에게 별로 필요하지 않은 것들을 제공하기도 합니다. 공동 저수지 만들기, 집짓기 등과 같이 실제 그 지역에 필요한 활동들이 진행되어야 하며, 내가 하나를 주었을 때, 나도 하나를 받아올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를테면, 내가 한국 노래를 가르쳐주었다면, 나는 그 나라의 전통춤을 배워오는 식으로 말이지요. 시혜적으로 많은 것을 주고 오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서로 호혜적으로 나누고 함께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야 해외 자원봉사활동에 참여가 진정한 성장의 경험이 될 수 있습니다. 



Q. 가장 좋았던 자원봉사활동 사례나 자원봉사자가 있나요? 


사실 국제 자원봉사활동은 다양성이 생명입니다. 어떤 활동이 아주 좋았다고 해서 그것이 표준화가 되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각자의 고유 색깔대로 진행되는 것이 가장 좋은 봉사활동입니다. 대학은 대학답게, 의료인은 의료인답게, 법조인은 법조인답게 봉사활동을 진행해야 합니다. 


ⓒ 라온아띠 홈페이지 제공 


그래도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을 꼽으라면 YMCA와 국민은행이 함께 하고 있는 ‘라온아띠 http://www.raonatti.org/ ’라는 프로그램입니다. 특정 프로그램을 정해 놓고 반드시 그걸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현지에 가서 그 지역에서 필요로 하는 것들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자신이 소속된 기관에 맞게 그들에게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것들을 찾아서 행동으로 옮기는 것입니다. 자원봉사 일감이 정해져있고, 그 일을 하기 위해 자원봉사단을 파견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럴 땐 자원봉사자들의 자율성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라온아띠’는 그런 문제들을 해결한 경우라고 볼 수 있습니다.



Q. 최근 자원봉사센터에서 주관하는 해외 자원봉사활동이 늘어나고 있는데요. 

    어떠한 자세나 사명의식을 가지고 접근해야 할까요? 


우선 현지 아이들이 코리안 드림을 가지게 되는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한국의 일면 만을 보여주고 현지의 맥락과 다른 허황된 바람들을 갖게 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하죠. 잘못하면 부정적인 영향으로 나타나게 되요. 무작정 한국에 와서 불법취업이나 이주여성이 되어 어려운 삶을 살게 되는 수도 있지요. 그들이 잘 살 수 있도록 돕는 것은 좋으나 잘못된 바람을 불러일으키게 해서는 안 됩니다. 


둘째는 ‘빈곤 포르노’와 같은 문제에 대해서도 경각심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빈곤국을 위한답시고 편견을 만들어 내지는 않는지 성찰해 봐야 하는데요. 일부 미디어에서 모금을 위해 지나치게 어려운 모습을 부각하는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빈곤포르노라고 말합니다. 쉽게 말하면 피골이 상접한 아이들을 지나치게 보여주어 의도적으로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것이죠. 이런 문제들은 제가 활동하던 ODA워치에서도 자주 다루었던 문제로 경각심을 가지고 조심히 접근해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Q. 해외 자원봉사의 발전을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하면 좋을까요? 


우리나라는 국제 자원봉사에 있어서 아직 법적, 제도적으로 미비한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그 중 가장 안타까운 부분은 자원봉사 자체를 하찮게 보는 것입니다. 많은 기업들이 해외 자원봉사 경험을 소중한 경력으로 인정해주지 않습니다. 1-2주간의 단기 봉사는 그럴 수 있지만, 6개월 이상 1-2년 동안 해외에 머무르는 장기봉사활동을 인정해주지 않는 것은 문제가 있고 개선되어야 합니다. 또한 직장인들이 일을 하는 도중에도 국제봉사활동에 참여할 수 있게 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KOICA와 협약을 맺는 형태로 기업의 직원들이 해외 자원봉사를 가게 해주는 것입니다. 실제 일본은 ‘현지참여제도’를 두고 이런 활동들이 가능하게 하고 있습니다. 


#에필로그


저는 자원봉사는 ‘숲’이라고 생각합니다. 숲은 여러 가지 나무들이 함께 어우러진 공간을 말합니다. 자원봉사도 여러 가지의 봉사활동들이 어우러져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각각의 단체들이 자신들에게 맞는 활동들을 다양하게 이루어 내야한다는 뜻입니다.  또한 숲이 만들어지기에는 정말 오랜 시간이 필요합니다. 많은 나무들이 자라려면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인데, 다양한 봉사활동이 어우러져 하나의 큰 자원봉사가 되기에도 역시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 인터뷰이>


< 촬영지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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